젠틀맨리그 / 앨런 무어 / 1~2
영미권의 '그래픽 노블'은 한국과 일본의 '만화'나 유럽권의 '만화'와는 또 다른 독특한 형태의 만화이다. 우선 용어를 comics이나 cartoon을 쓰지 않고 'graphic novel'을 쓴다는 것부터가 흥미롭다. 그림으로 된 '소설'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야기'에 더 중요성을 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물론 그래픽 노블이란 용어의 탄생이 만화가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와서 살펴보면 어쩐지 comics보다 더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사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라, 영미권 특유의 만화책 제작 방식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고 있다. 어쨌건 한-일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스토리도 쓰는 것이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종종 글작가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 만화는 그림 작가의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허영만, 이현세 등) 물론 요즘 들어서는 스토리 작가의 기반도 나름대로 탄탄해지긴 했지만, 전통적으로는 역시 만화는 '그리는 사람'의 것이었던 거다.(또한 그림-글 작가가 따로 있는 경우는 단발성이 아닌, 팀을 이뤄서 계속 같이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영미권의 '그래픽 노블'은 '스토리 작가의 예술'로 보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그림 작가는 언제든 교체되고, 바뀔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그래서 이 '젠틀맨리그'의 작가를 써 넣을 때 나도 '앨런 무어'를 넣은 것이다. 앨런 무어는 다양한 그림 작가들과 작업을 하지만, '왓치맨', '브이 포 벤데타' 등의 작품은 늘 '앨런 무어의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닐 게이먼 등도 마찬가지)
앨런 무어의 대표작들 중 하나인 '젠틀맨리그'는 19~20세기 문화의 덕질 끝에 나온 팬픽같은 작품이다. 우선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다들 '드라큘라', '해저 2만리', '지킬 앤 하이드' 등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다. 앨런 무어는 이 인물들을 모아 하나의 드림팀을 만들어, 그들이 활약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이런 작품을 만든 것이다.
'젠틀맨리그'를 읽다 보면 가장 놀라게 되는 것이 작가와 번역자의 지식이다. 앨런 무어는 정말 수많은 19~20세기의 소설, 문화 전반에서 수많은 인물들을 데려와 '젠틀맨리그'에 등장시킨다. 단순히 그 인물들을 가져다 쓰는 것만이 아니라, 원작이 지닌 의미를 제법 살리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리고 번역자는 그 작품들에 주석을 달아 일일히 설명을 해준다. 철저히 독자를 위한 정말 멋진 작업이었다.
작품 자체는 앨런 무어의 그간의 작품들보다는 조금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 자체가 19~20세기 유럽 문화에 대한 오마주같은 것이다보니, 그 당시의 유럽 문화가 다소 낯선 우리들은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들다. 당시의 시대상이나 역사 자체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이건 '브이 포 벤데타'보다 '왓치맨'에 집중하기 편했던 이유와도 같다. 두 작품은 모두 현대사를 조금 비틀었다는 점이 같지만, '브이 포 벤데타'는 철저히 영국의 현대사에 기반한 만화이기 때문에 낯설었고, '왓치맨'은 미-소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익숙했다. 그래서 '왓치맨'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앨런 무어를 좋아한다면 읽어보기 좋은 작품이지만, 앨런 무어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다면 난 '왓치맨'을 더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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