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의 날개 / 히나타 타케시 / 1~45
국내외의 모든 농구 만화는 '슬램덩크'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타치 미츠루도 분명 최고의 작가들 중 한 명이고 여러 야구 만화들(터치, H2 등)을 그렸지만, 모든 야구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의 영향 아래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무라이 만화, 칼싸움 만화를 그릴 때 '슬램덩크'의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베가본드'를 의식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농구만화'에서만큼은 어떠한 만화도 '슬램덩크'를 의식해야만 한다.
이것은 철저하게 '슬램덩크'가 가진 좋은 작품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그림과 연출, 스토리 모두 '슬램덩크'보다 '베가본드'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베가본드'가 '슬램덩크'보다 위대한 만화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슬램덩크'는 만화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의 삶과 너무나도 깊이 얽혀 있어서 이젠 그 자체만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종의 문화 현상까지 되어버린 느낌인 것이다.
강백호, 서태웅 같은 이름을 들을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일정한 느낌과 감정이 있다.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oasis의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가 한 이야기들 중에 이런 게 있다. 그가 쓴 히트곡 중 하나인 'don't look back in anger'라는 노래는, 단순히 히트곡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다. 노엘은 그 곡에 대해서, 이 노래는 자신이 쓴 노래이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게만은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이 쓴 노래는 맞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십여년이 지나도록 계속 불러지는 노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뜻이었다. '슬램덩크' 또한 많은 사람들의 성장기에 적절한 순간에 찾아와 큰 의미를 남기게 했고, 그것은 '슬램덩크'가 하나의 존재로 자생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모든 농구만화는 '슬램덩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라의 날개'는 물론 정말 재미있고 좋은 농구만화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 심지어 작가까지도 만화를 그리며 보는 내내 '슬램덩크'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만화가 '슬램덩크'보다 낫고 못하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슬램덩크'를 의식해야 했지만, 그런 과정을 뛰어 넘어 이렇게 좋은 만화를 내줬다는 것에 대한 감사 인사다. 모르긴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작가는 '슬램덩크'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만화를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만화를 그렸을까. '슬램덩크'이후로는 사족에 불과한 '농구 만화'를.
그것은 작가 히나타 타케시가 34권에 쓴 작가의 말을 통해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라의 날개' 작품 자체로 더욱 설득력 있는 설명을 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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